목록나, 생각 (10)
데시데리움

사실 나는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잘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서운함이 가끔 어렵다. 살아가면서 이런 말들을 들을 때가 있다. 네가 나를 정말 어떤 관계로 생각했다면 나한테 이렇게 해선 안 돼. 네가 나를 이 정도로 생각해 주지 않아서 서운해. 네가 어떤 행동을 한 것, 하지 않은 것이 나를 서운하게 해. 저런 말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말들이다. 상황이나 그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서운한 것, 힘든 것. 모두가 합당한 감정이고 느낄만 해서 느끼는 것일 테다. 물론 그 원인이 나라는 것도, 내가 어떤 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저런 말들이 어렵고, 납득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저렇게까지 느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걸까? 기대..
알고 보면 나는 사람들을 참 서운하게 만든다. 답장이 느린 것도 그렇고 관심이 충분하지 않은 것. 내가 하고싶은 일이나 할 일에 골몰하며 독립성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 글에서는 비밀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비밀주의 내 이야기를 뭐든 털어놓는 것은 나에게 약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인터넷에 글을 잘 쓰지 않는다. 댓글도 쓰지 않는다. 내 의견을 표출하거나 내 사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다. 반쯤은 귀찮아서, 반쯤은 어떤 환경과 배경일지 모르는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내 말이 어떻게 와 닿을지 알 수 없어서.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 수 있는데다 내가 모든 것을 전부 아는 것도 아니니까. 내 주장은 그저 내 주장일 뿐이니 굳이..

전 연애에 대해서는 어디서도 말하지 않지만 내 블로그에서 몰래 쓰는 정도는 용납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포회피형과 회피형의 연애는 말 그대로 최악이다. 연애하면서도 상당히 많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사람들의 사례를 수집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공포회피형과 회피형이 연애를 하면 공포회피형이 불안과 회피를 혼자 반복하면서 이른바 '널뛰게' 된다. 1. 왜 공포회피형은 회피형에게 끌릴까? 2. 회피형과의 미친 연애 3. 결론 1. 왜 공포회피형은 회피형에게 끌릴까?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회피형의 그 독립적이고 혼자 뭐든 잘할 것 같고 나에게 의존하지 않을 것 같은 그 느낌이 공포회피형에게 안전한 거리감이라는 착각을 준다. 너무 밀접하게 다가오는 친밀한 관계를 회피하는 공포회피형에게, 회피형의 그 거..

나는 항상 사람들이 힘들 때 지지해 주는 커다란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힘든 시기가 많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주위 사람들의 존재와, 내가 하는 일들의 상징성으로 버텨 왔다. 의미부여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시기에 곁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많이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는 인간관계에 운이 따랐다고도 할 수 있다. 웬만해서는 깊게 얽히지 않으려는 나의 방어심리가 안전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에 도움을 준 건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로 인해 성장하고 인생이 얼마나 즐거운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
생각보다 공포회피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내 이야기를 간단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이른바 학대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다. 내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다. 밤에 자다가 머리를 발로 차서 얻어맞고, 문을 잠그면 두드리고, 죽여버린다는 말을 종종 들었으며, 한때 입시에 실패했을 때는 별 저주의 소리를 다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입시에 성공했을 때도 한 3개월만 조용했지 또다시 저주의 소리를 들었다. 세상에는 긍정 확언이라는 게 있다. 요새는 그걸 종종 읽곤 하는데, 그때의 나는 가족으로부터 그와 반대인 부정 확언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것도 내가 잠을 자야하는 새벽에. 사이비들이 세뇌를 위해서 자주 하는 방법이 잠과 밥을 제때 주지 않고 사람을 몰아붙이며 세뇌하고 싶은 말을 반복하는 거라고 한다. 아버지..
앞에서 SNS는 낭비다라는 글을 쓴 뒤, 이렇게 트위터를 콕 찝어 말하는 이유가 있다. 정말 트위터는 낭비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친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정보만 얻고 싶은 라이트 유저에게는 그렇다.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인지 더욱 트위터가 곱게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트위터를 하는 유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구독용 계정이 있고, 몇몇 사람들과 취미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계정도 있다. 트위터는 잘만 사용하면 여러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으며, 취미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처음에 트위터를 개발했을 때, 창립자는 유명한 사람들, 전문가, 학술가, 그리고 여행가들, 취미가 맞는 사람 등 우리가 평소에 쉽게 만날 수 없거나..
개인적으로 SNS는 안 할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인맥관리가 특별히 필요한 사람이나 그걸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쓸데없는 정보가 머릿속에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전 글에도 말했지만 뇌에는 가소성이라는 게 있다.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되어 있으며 타인의 삶에 집중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 좋아요를 누르며 우리가 SNS를 계속해서 보도록 유도하는 수많은 알고리즘과 자동 추천에 의해 시간을 보내게 될 때, 나는 인생이 낭비되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일을 하는 도중에 알람이 울려 SNS를 확인하게 될 때, 다시 집중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는다. 이는 내 느낌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우리의 뇌는 멀티플레이를 못한다.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사람은 무엇에든 영향을 받는다. 석기시대에 살았던 사람과 지금 사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일부 생존에 필요한 필수 자원의 기능을 제외하고 전혀 다르듯이 말이다. 조선시대에 사는 사람이 새 휴대폰을 원하겠는가? 존재를 모르면 원할 수가 없다. 즉, 정보가 우리의 뇌에 닿지 않으면 뇌는 그에 대한 반응신호를 내뿜지 않는다. 욕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초적이고 삶에 필수적인 욕망은 정보의 입력 없이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다. 그것들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욕망들은 다르다. 정보에 달려 있다. 또 왜 정보를 걸러야 하느냐? 뇌의 가소성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정보를 처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