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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시데리움

[공포회피형 내 이야기] 서운하다는 것, 기대. 관계라는 것. 본문

나, 생각

[공포회피형 내 이야기] 서운하다는 것, 기대. 관계라는 것.

desiderium 2023. 1. 2. 18:31

 

출처 픽서베이

 

사실 나는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잘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서운함이 가끔 어렵다.

 

 

살아가면서 이런 말들을 들을 때가 있다.

네가 나를 정말 어떤 관계로 생각했다면 나한테 이렇게 해선 안 돼.
네가 나를 이 정도로 생각해 주지 않아서 서운해.
네가 어떤 행동을 한 것, 하지 않은 것이 나를 서운하게 해.

 

저런 말들은 나에게 있어서는 어려운 말들이다. 상황이나 그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서운한 것, 힘든 것. 모두가 합당한 감정이고 느낄만 해서 느끼는 것일 테다. 물론 그 원인이 나라는 것도, 내가 어떤 면에서는 부족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저런 말들이 어렵고, 납득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저렇게까지 느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든 걸까?

 

 

기대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사람은 이런 관계니까, 친하니까, 어떻게 해 주겠다고 했으니까 이러이러하겠지라는 가정이 거의 없다. 나에게 있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이나 현재의 감정에 따라 태도를 조금씩 바꿀 수 있는 존재다. 그 이유만 내 안에서 납득이 가면 된다. 또한 사람들은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덜 원한다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 것들 모두 나는 납득이 간다.

 

내가 그렇게까지 대우받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소소한 선의가 매우 감사하고, 그것에 대해서 잊지 않고 되돌려 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그냥 천천히 멀어진다. 멀어지고자 해서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네. 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그게 나와 맞지 않는다면 기본적인 인간적 존중을 하는 것 외에 추가적으로 교제하려는 노력을 투입할 이유가 없어서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나로부터 일어난 문제는 여태껏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먼저 문제 제기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있어도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하는 제안 정도다. 상대가 승인하거나 거절하면 깔끔하게 물러선다. 하지만 나로부터 문제가 생긴 적이 없다고 하는 것도 이기적인 합리화이다. 여태껏 내가 사람을 서운하게 만들어서 일어난 트러블은 그 사람 내부의 문제도 있겠지만, 결국 나와 내 태도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닌데다 나 역시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기대가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지 나는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채 멀어지거나 대안을 찾을 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서운해했을까.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을 서운해하나?

 

첫 번째로 사람들이 제일 처음 서운해하는 건 당연코 연락이다.

 

내게 있어서 제일 어려운 것들 중 하나가 사람에게 관심을 유지하는 일이다. 이는 공포회피형이 아니라 그냥 내 특성에 가까운데, 그냥 관심이 없다. 사람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 사람의 소소한 생활이나 인간관계, 그리고 일에서 있었던 일들을 내가 궁금해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물론 아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일의 흐름이나 생활의 흐름같은 것은 알고 싶다. 나쁜 일이 있으면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싶고, 기쁜 일이 있으면 나누고 축하해주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락이나 만남에서 나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기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하는 이른바 '반응형'이 된다. 그 스트레스가 커서 별로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뭘 하고 있든 간에 그게 내 생활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알고 싶은 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패러다임이나 가치관, 올바른 생활 습관과 그 사람의 야망 같은 것이다. 좋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다만 소소한 관심이나 연락, 챙김. 이런 것에 나는 둔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두 번째로 서운해하는 건 내 관계 유지에 대한 적극성이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대가 없어서, 내가 특별하게 그 사람과 하고 싶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궁금함이나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그런 화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 깊게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그렇게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이는 내 인간관계의 협소함에서 기인할지도 모르는데. 대부분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성격, 일에 대한 태도 등을 내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정보를 습득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

 

누군가와 하고싶은 것도 별로 없다. 얘랑 뭘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딱히 없는 것이다. 같이 하면 더 좋고 즐겁지만 혼자 해도 그렇게까지 상관이 없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나는 대부분의 관계에서 그냥 맞춰준다. 걔가 말하고 싶은 것, 걔가 가고 싶어하는 곳. 가끔 나로부터 뭘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긴 하는데 받아들여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그냥 던지는 것들 뿐이다. 안 가고 안 해도 상관이 없어서 아무런 타격이 없다. 물론 메뉴를 고르거나 할 때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전에 그런 세부적인 것도 맡겼었는데, 솔직한 어떤 사람이 내가 다 맞춰 버리면 자기가 오히려 내가 좋아할만한 선택지를 고르려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변화를 주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신경 쓰느라 추가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별로기도 하고, 내 취향도 어느정도 파악이 된 이제는 세부적인 것에 대한 의견은 확실하게 어필하곤 한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뭐 하고 싶다고 하면 결과적으로 타협안을 찾거나 따라가는 편이다. 뭘 해도 괜찮고 즐거우니까. 실패해도 웃긴 에피소드가 하나 늘어날 뿐 아닌가.

 

어쨌든 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해서 뭘 묻거나, 뭔갈 하기 위해 만나자는 제안을 잘 하지 않는다. 상대는 궁금해해서 더 물어봐 주길 바라는데, 나는 네가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는 태도다. 해도 괜찮고 하지 않아도 괜찮고.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고. 이런 태도가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내게 서운함을 표시한다면?

 

 

여기서 하나 밝혀둬야 할 것이 있는데,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좋아하지만 너무 친밀하게 붙어서 하루를 공유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조금 떨어져 있다가 재미있는 활동을 할 때만 만나고 싶다. 너무 밀접한 관계는 나에게 있어서 고통이다. 안 맞는 것도 맞추고, 상대에게 최적화된 반응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걸 하루종일 하라니. 아무리 좋고 아끼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건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물론 아무도 나에게 자신에게 맞추고 최적화된 반응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다. 그 사람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나 혼자 스트레스를 받아서 버거워한다. 이 모든 건 내 기질과 내가 택한 관계 유지 방법이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 평범하게 교류하고 싶어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내 기질을 전부 이해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게 평범한 기질은 아니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서운함을 내게 표시하면 나는 그냥 무조건 저자세로 나간다. 내가 또 잘못했구나.

 

이해가 가지 않아도 일단 사과한다. 이유를 물어보고, 이유에 대해서 네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고 긍정한다. 그리고 내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보통은 그 사람에게 돈을 써서 좋은 걸 해주고, 앞으로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네게 어떻게 하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계를 회복해 준 사람들이 몇 있다.

 

 

공포회피형인 나의 심리

 

 

하지만 내심으로는 직접적으로 이런 행동이 별로니까 이렇게 하라, 고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 내 전반적인 태도에 서운함을 느끼고 내가 자신을 아끼는 것까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실망한다. 아끼고 소중한 건 정말인데 내 진심까지 부정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모든 건 내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느낀다. 이 실망감을 밖으로 표출한 적은 아직까지 없다. 상대가 본능적으로 변화를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원만하다. 하지만 내가 느낀 그 실망감이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분명히 뭔가를 깎아 먹었다. 그 사람이 내게 감정을 다쳤다고 말하는 그 시점에서 나도 다치고 말았다. 나는 이 사람과는 안전한 관계가 아니라는 카테고라이징을 은연중에 하지 않았을까.

 

이 사람은 나한테 이제 안전한 장소가 될 수 없구나. 그것을 느껴 버리면 나는 심리적으로 거리를 둔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인 둘이 만나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느껴 버린다.

 

단지, 감정적으로 들어오지 않고 이런 행동이 더 좋으니까 이렇게 해, 라고 말하는 것에는 전혀 실망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냥 내가 내 나름대로 힘내서 아끼려는 방법이 잘못되었고, 부정적인 감정을 주었다는 사실을 못 견디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은 나에게 기대를 하는 것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랑 있으면 즐겁고 편해서 기대하는 건가.
그건 내가 맞추고 있기 때문이지 본질적인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지금도 내 안의 폭풍을 견디느라 힘든데, 여기서 더 요구한다고? 라는 뒤틀린 사고.

 

나는 그냥 서로를 잊지 않고 가끔 서로 물을 주는 화분같은 관계가 되길 원한다. 혹은 관념적인 존재로서 상대와 교류 없이 상대가 잘 지내는 것을 알기만 해도 괜찮다고 여긴다. 여태까지는 그게 제일 편했다.

 

태도에 관해서는 상대와 만날 때 집중하는 것과 꾸준한 관심, 배려와 예의면 된다고 생각한다. 꾸준한 관심이 어렵지만 노력해볼만 하다. 사람들도 대체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이해를 해준다. 내가 어느정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으면서도 정말로 멀어질까봐 아등바등하면서 하지 않아도 될 노력까지 하고 있어서 그렇지. 꾸준한 관심, 그래. 관심... 거리가 밀접하면 친밀해진 관계에 내가 너무 신경을 써야 해서 버겁고 숨이 막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기대에 응하지 않는 것은 조금 힘들다. 평범한 기대인데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그냥 만나자거나 영화 보자는 제안인데도 내키지 않아 거절하는 내게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내가 또 사람을 이렇게 거절하는구나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절해 버리면 내게서 멀어질 거잖아? 내가 그 '편하진 않지만 달콤한 친밀감'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원하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세상에 있기나 할까.

 

혼자이고 싶다. 하지만 혼자가 싫다. 사람이 너무 좋은데, 동시에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버겁다. 내가 안전하고 편할 수 있는 관계를 찾아 다니지만 그런 관계는 없었다. 하지만 계속 찾는다. 친밀감이 좋은데 너무 친밀해지면 버겁다. 내 감정과 비밀을 다 털어놓고 싶은데 동시에 내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서로를 알아가고 싶지만 너무 파고 들어오는 것은 싫다. 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혼자이고 싶다. 이것의 반복.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관계가 고통스럽고 사람이 미칠 것 같아진다. 그래서 정말 적당한 거리로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게 된다. 내가 숨이 막히지 않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내게 필요 이상의 기대와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친밀감을 제공하는 사람들. 하지만 역시 아직은 어렵다. 서운함도 어렵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또한 이 모든 생각 속에 너는 어차피 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오거나 선택을 해야 할 때 나를 선택해 주지 않을 거잖아. 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