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생각

정보의 오류 : 모든 정보는 그 의도성을 의심해야 한다

desiderium 2022. 10. 23. 05:40

이 세상은 수많은 정보로 넘쳐나고 있다.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자연의 섭리보다 기계와 정보의 섭리에 더욱 익숙한 삶을 살고 있다. 예를 들어서 무더운 여름에 우리는 에어컨 아래에 산다. 휴대폰 하나만 열면 수없이 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과연 '자연적'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법하다.

 

본 글의 제목이 정보이니 기계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은 미뤄 두겠다. 아직 기계는 우리에게 편리한 친구로 남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는 다르다. 그 전에 말과 언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들은 다 파동이다. 우리 자신의 정신, 우리 자신의 에너지를 자신과 비슷한 파장으로 바꾸어 놓기 위한 것들이다. 너무 추상적으로 설명했지만, 곧 이해가 될 거라 믿는다. 예를 들어 사회에서 규정된 관습과 규칙을 어렸을 때부터 학습한 사람은 아주 당연한 듯이 그것을 따른다. 사회에서 왜 그런 관습과 규칙을 만들었을까? 사회에 이로운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다. 여기서 아주 개인적이고 특수적인 개인적 차별성은 더욱 거대한 관념 아래에서 당연한 듯이 무시된다.

 

그렇다면 정보는 어떨까? 정보 역시 편향성과 방향성을 담고 있다. 발화에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광고에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건을 소비하라는 메시지다. 그 목적을 위해서 정보가 전하는 메시지는 공격적일 수도, 은근슬쩍 회유할 수도, 심지어 우리의 기준을 바꿔 놓으려 할 수도 있다.

 

타인의 말도 그렇다. 그냥 하는 말은 하나도 없다. 공감을 전하는 말부터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말, 탓하는 말부터 그냥 정보를 전달하는 말에서까지. 모든 말에는 의도가 있다. 너무 뻔해서 말하기 싫어지는데, 이 당연한 사실을 가끔 까먹는 사실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역시도 가끔 까먹는다. 타인의 의도가 '선의'와 '사회적 관습'에 감추어져 있는 경우 그 본질을 보기 어려운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선과 정의, 정상이라는 그늘 아래에 숨는다. 명분으로 삼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그 본질적인 의도를 해석하고 우리의 차별적 고유성을 유지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인생을 타인에게 빼앗기느냐 빼앗기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타인에게 휘둘리며 시간과 자원을 빼앗긴다면 그것은 인생의 낭비라 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래왔던 내 인생의 일부분에 탄식하고 있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자신의 가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가치 기준을 세우는 일은 간단하다. 제일 중요한 것만 남기고,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것은 쳐내면 된다. 인생은 너무나도 짧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든 실천이 쉽지가 않은 법인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