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고유한 것들에 대한 집착

desiderium 2023. 3. 30. 09:30

예전부터 내 고유한 것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강했다.

보는 책, 보는 영화, 보는 영상,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만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숨기고 내 고유성이라고 생각하며 집착하던 게 바로 나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 같은데, 첫 번째로 좋은 건 나만 알고 싶은 쫌생이 기질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고. 두 번째는 내가 고유한 취향을 드러내서 받아들여진 적이 별로 없으며 자주 파괴 당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을 학교에서 빌려서 집에 가지고 갔는데, 이런 거나 본다고 아버지한테 집어 던져지고 볼펜으로 책 앞 표지에 크게 선을 그어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또 중학생 때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내 신체적인 콤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해 그림을 미화해서 그리냐는 듯이 비꼬고 비난했다. 그 그림은 자화상도 아니었으며, 나는 신체적인 콤플렉스가 없다. 그냥 망상을 지어내서 나를 비꼰 것이다. 또한 비밀 노트에 쓴 일기와 감정들은 어머니가 하나하나씩 발굴해서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일기에는 대개 자기계발적인 얘기나 철학적인 얘기를 적어 뒀는데, 당연히 자고 있는데 방 안에 들어와서 내 머리를 발로 차서 눈 건강을 의심하게 만드는 아버지가 싫다는 얘기도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걸 고고학자처럼 발굴해 내서 만천하에 전시하는 어머니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뭐든 혼자 하는 걸 좋아하고 타인에게 뭔가를 보여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극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요새 뭘 하느냐고 물어 보면서 이것저것 캐묻고, 알려주지 않으면 실망한다. 어차피 주위 사람들한테 가십거리로 써먹거나 검색해 보고 호기심 충족하고 말 생각이면서 왜 그렇게 집착적으로 알아내려 하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세 번째로 내 작업물에 대해 공개하고 그랬던 적도 있는데, 어떤 친구가 성과를 듣기 싫다고 했던 적이 있어서 더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말한 심리는 이해한다. 그 친구도 안정적인 상태는 아니었으니까. 다른 친구에게 말하니 그 친구 앞에서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취준생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승진했다고 하는 느낌이었겠지. 하지만 아마 그때 나는 심각하게 상처받았던 것 같다. 집에서 탈출하듯이 나온 뒤 내가 불안에 미쳐 가면서도 유일하게 자부심을 느끼고 개척해 나가던 게 내 꿈이었는데 그 성과를 누군가가 듣기 싫어한다는 생각 때문에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참고 참다가 몇 개 꺼내든 이야기에 그런 말을 들어서 더 그랬다.

 

사실 나를 잘 아는 누군가가 내 작업물을 검색해 본다는 사실 자체가 스트레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려 주었는데 여러 충격적인 일들이 발생해서 지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결국은 또 내 문제겠지.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거. 그런데 지금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도 나는 딱히 내 얘기는 익명이 아니라면 잘 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에는 그런 생각도 한다. 내가 내 고유한 것들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기저에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다 평범한 것들이지 않을까. 굳이 숨길만한 일도 아닌데 이런 것도 너무 자기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혹은 많이 예민하거나. 개인적으로는 후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