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리잡에 대해

desiderium 2023. 3. 30. 08:56

최근엔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있다.

새벽의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간간이 들리는 가게 상인의 빗질 소리와 함께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현재 일을 세 개 하고 있는데 목표를 설정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며 매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면서, 그렇기에 제일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마치 공부에 왕도가 있지만 그걸 따르기가 무척이나 어렵듯이.

 

살아 오면서 많이 힘들었고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에 대한 보상을 얻고 싶어했던 때가 있었다. 보상은 별 거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있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건들여지지 않는 평온한 상태로 죽은 듯이 몇 주 정도 잠이나 자고 싶었다.

 

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죽일 뻔했던 집에서 나오기 위해 휴일 없이 쓰리잡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눈길에 넘어졌을 때 나를 지켜봐 주는 건 달 하나였다. 삐걱이는 작은 캐리어를 끌고 몸 하나 뉘일 수 있는 작은 방 안에 들어간 내가 느낀 것은 해방감도 행복도 아닌 그저 오늘은 살았구나, 라는 감각이었다.

 

그때는 그저 뒤에서 누군가가 칼을 들고 쫓아오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앞만 보며 달렸던 것 같다.

오전에 새벽 오픈, 주말에 아르바이트 두 개. 평일에는 본업.

공허를 메우기 위해 환상을 그러쥐었고 그것이 내 전부였던 나날.

 

평일 중, 본업을 시작할 때마다 너무나도 자신이 없어서 두어 시간 동안 불안을 달래야만 시작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칭찬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칭찬들이 뒤돌아서면 나를 찌를 칼인 줄만 알았다. 밤에는 내가 만든 결과물의 오류를 비난받는 상상에 시달렸다. 자책감이 독처럼 목을 붓게 만들고 머리를 뒤흔들었다. 압박감에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상상만 수천 번.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하면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다.

불안을 억누르고 공포를 회피하며 살아남기 위해 그때그때의 목표에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었다.

 

사실 잘 살아 왔는지는 모르겠다. 집에서 나온다는 목표가 달성된 뒤, 나는 공허와 불안을 메우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굴기 시작했으니까. 가족이 없다는 것과 지지기반이 없는 것은 마치 삶을 부평초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삶. 평생 이럴 거라고 생각하니 무언가를 열심히 할 의욕마저 꺾였더랬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나만의 행복한 가족을 가지는 게 내 꿈이었는데, 결혼이 새로운 지옥문을 여는 것이라 생각하니 인생에서 내 꿈 외에 하고싶은 것이 없었다. 이정표로 삼던 별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지지기반이 없다는 공허. 그걸 없앨 수 있었던 건 순순한 포기였다. 없는 건 없는 거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용기라고 했다. 누구나 힘들게 살며, 과거에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자신을 연민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 그저 책의 서장에 잠시 언급되고 말 시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런 시련과 상관없이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날 거라고 믿어야 한다.

 

요새도 쓰리잡을 한다. 다만 예전이랑은 조금 다르다. 이제는 공허도 불안도 없다. 기댈 생각은 없지만, 옆에 기대어도 된다고 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감사한 인연들도 있고, 감사한 기회도 있다. 최근에는 그저 오늘 하루를 내가 최선을 다해서 살지 못할까봐. 나와의 승부에서 이기지 못할까봐. 그것이 주요 관심사이며 그 사실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나는 외로움이 성취감 앞에서 흐려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하나를 잡으면 고집스럽게 그것만 파는 사람이라, 내 성공 역시 이제는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쓰리잡이 체력적으로 힘든 데다가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잠을 줄이는 것도 많이 피곤해서 보완이 필요해 보이긴 한다. 하루에 최소 7시간~12시간 일하고 있다. 휴일은 공휴일 외에 없다. 일하는 시간의 편차가 큰 건 아직 이렇게 일하기 시작한 게 몇 달 안 됐기 때문에 사이클을 만드는 시행착오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하루에 12시간 일하는 게 목표긴 하다. 5년 내로 내 작업물과 내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들 것이니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하고 힘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