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생각

[공포회피형 내 이야기] 안전기지라는 환상

desiderium 2023. 1. 1. 12:25

픽서베이

 

나는 항상 사람들이 힘들 때 지지해 주는 커다란 나무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힘든 시기가 많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주위 사람들의 존재와, 내가 하는 일들의 상징성으로 버텨 왔다. 의미부여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시기에 곁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많이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는 인간관계에 운이 따랐다고도 할 수 있다. 웬만해서는 깊게 얽히지 않으려는 나의 방어심리가 안전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에 도움을 준 건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로 인해 성장하고 인생이 얼마나 즐거운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나를 올바로 세우고, 독립심을 가지고, 좋은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힘들어 봤으니까. 힘들고 버겁고 정말 세상에 홀로일 것 같을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곁에 있어주고 싶다고 항상 그렇게 생각해 왔다. 지금의 나는 그 길을 올바로 걷고 있는 걸까?

 

그런데 요새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내 사람들을 여러모로 서운하게 만드는 일이 많다. 특히 연락과 성의 부분에서, 이는 내 잘못이고 내 문제다. 흔한 자책이 아니다. 최근의 나는, 관계 에너지가 심각하게 떨어져 있다. 집을 떠나고 나서 4년, 나는 심각한 중독에 빠졌다. 바로 관계 중독이다.

 

에노모토 히로아키의 <고독이라는 무기>의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이어져 있지 않으면 너무나 불안해하는 것 같다.
이를 이 책에서는 '관계 의존'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른바 인터넷 친구나 인스턴트 관계를 만들고 거기에 매몰되는 생활을 하기 시작한 건데, 이게 상당히 중독성이 있으면서 나의 현실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냈다. 앞선 글에서 타인의 호의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게 인터넷의 좋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찾고 내 반응을 기다린다는 것에 홀려서 내 생활과 주위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는 사실 가벼운 인스턴트 관계가 안전하기 때문에 나를 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가 될 거라고 착각했었다. 또한 내 주위에 사람이 많이 있다면 한쪽에서 나를 거부하거나 내쳐도 나에게는 다른 놀고 이야기할 창구가 생기니까 내가 더 안전해진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터넷 관계는 정말로 인스턴트적인 감정만을 주고받을 뿐, 나의 이해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주니까 결국엔 진실한 관계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밝은 것들을 찾으러 간 나는 오히려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들만 엄청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공포회피형인 점에 더불어 관계에 쓸 에너지가 없다시피 한 사람이다. 한 관계에만 신경을 써도 가까웠다 멀어지는 그 템포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신경 쓸 인스턴트 관계가 여럿이다? 그건 나를 정말 망치는 길이었다. 그 결과 우물에 안 그래도 물이 없는데 사람들에게 길어 주다가 다 동이 나 버렸다. 사람이 더는 특별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인스턴트 만남이 많아져서 어떤 만남도 기대가 되지 않고, 매일 연락을 도는 행위는 나에게 상사와 면담하는 시간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여러 사람에게서 개인톡이 말풍선만 12~20개는 와 있는데, 실제로 그냥 일상톡 답장을 하는 것뿐인데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스트레스 때문에 하루 일을 못한 적도 있었다. 이건 조금 심각하지 않나 싶다.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게 편하기 때문에 더욱 이런 것에 의존하기 쉬웠다. 너무 친밀해지지 않아 안전하면서도 긍정적인 피드백, 이른바 '좋아요' 같은 걸 주는 관계. 그게 나에게 있어선 어떠한 독보다도 달콤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 사람들은 내가 소중하고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마구마구 준다. 달콤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그 사람들도 외롭거나 헛헛하거나, 현실 생활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인스턴트 관계에 의존하지 않았나 싶다. 저 설명은 나에게도 해당한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때는 그런 것들을 꿈꾸었다. 내가 어떤 걸 한다고 했을 때 '잘 하고 와'하고 배웅해 주고, 내가 다 끝내고 오면 '잘 하고 왔구나, 어서 와.'하고 말해주는 관계.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 그게 있다면 지금 많이 힘들어도 버텨낼 수 있을 텐데. 그런 환상에 사람을 많이 찾았다. 오카다 다카시의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라는 책에서 나온 안전기지라는 것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찾으려 하면서 인간관계를 서툴게 매만지려 노력했다. 이미 좋은 관계들이 있는데도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 얕은 인맥같은 건 나에게 사치에 불과한데도.

 

작년 일기를 봤는데. 작년부터 인스턴트 관계가 지쳐서 계속 끊어내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중요한 게 아닐 텐데도, 비슷한 인스턴트 관계가 수없이 많을 텐데도 나는 내가 누군가를 거절하거나 거기서 나와서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그 순간을 너무나도 견디기가 힘들다. 정말로 힘들다.

 

나는 아직 나무가 되지 못했다. 자라고는 있나 모르겠다. 어쩌면 겨울 바람에 이미 가지가 꺾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분명 주위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점점 지치고 있다. 받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만큼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걸 받아 버리면 너무 친밀해질까 머릿속에 경고등이 켜진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주는 것이 편한데도, 주는 행위에도 지쳐서 이제는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사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뭘 주긴 했나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줘야 겠다는 생각만 하지 아무것도 준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책에서 읽었는데,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 말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나는 어쩌면 내가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주면 누군가도 자신의 나무 그늘을 잠시라도 내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환상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도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그런 지지대가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환상을 버리고, 내가 나무가 되지 않기로 한다면 오히려 내가 그나마 가진 장점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인다. 내가 만약 나무가 아니라 바람이 되어 버린다면, 그나마 드리우는 작은 그늘마저 사라진다면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지 않을까. 그러나, 대신에 자유로워질까?

 

지금은 나에게 잘 다녀 와, 라고 하고 잘 다녀왔구나. 라고 해주는 사람이 있다.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 사람이 나에게 큰 나무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안전기지를 찾은 걸까? 하지만 나는 뭔가를 찾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역시 언제 사라져 버릴까 두려운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뒷걸음질을 치고 마음에 거리를 두려고 한다. 이 사람도 언젠가는 갈 테니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잘해주지 않으면, 더 성공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면이라는 강박이 더욱 거세진다. 그런 모든 것들이 나를 옥죄여서 그냥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기도 하다.

 

어차피 누구도 내가 제일 바랄 때는 나를 봐 주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